※ 선택지가 여러가지 있는 것은 어떤 것을 선택하든 결과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음을 뜻합니다.
※ 펜릴 엔딩을 보기 이전, 혹은 '처음 걷는 느낌으로, 계속 걸어가자.' 이후의 선택입니다.
오딘이 던져준 티르의 왼팔을 먹고 펜릴이 된 소현.
시안의 몸은 대체 어디다 팔아버리고 저런 모습으로 변해버린 것인지는 아직도 의문이로군요.
다음은 플레이 하면서 적당히 캡쳐했던 이미지들과 추출해낸 리소스를 종합하여, 개인적인 판단으로 하이라이트라 생각되는 부분부터의 대사를 적어놓은 것입니다.
스포일러(네타)가 될 수 있으니, 정 궁금하신 분들만 보시기 바랍니다.
"격조했사옵니다. 어머님."
나를 수천 년간 잉태해준 신은 내 진담에 진심으로 즐겁게 웃었다.
"지난번보다 나은 모습을 기대하마."
"괜찮겠사와요? 군대 없나이다. 군신."
"두 다리와 두 팔이면 지휘하기 충분하고도 남지."
과연. 저건 모든 군대를 잃어도 마지막까지 군신으로 군림할 자.
이렇게까지 온 이상 나도 다른 할 말은 없다.
"준비는 됐는가. 늑대여."
준비라.
무심코 손이 올라가 입술을 쓰다듬는다.
응, 아직 남아 있다.
그 수유(須臾)에 스쳤던 입술의 고동이, 아직도 입술 끝에서 희미한 온기를 뿌리며 뛰고 있다.
…두근, 두근.
이 반주만 있다면. 언제나 최고의 춤을 출 수 있어.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춤을 신청했다. 그는 즐겁게 웃고 내 장난에 어울려준다.
더듬이를 내밀어 서로를 더듬듯, 짐승들이 구애의 춤을 추듯. 그런 약속된 장난 끝에.
동트는 설원. 깨어져 나가기 시작한 세계의 꿈속에서, 나는 군신에게 달려들었다.
격돌.
--- 또다시 상처 입는다.
놀라지는 않았다. 이미 칠백 사십 수 전에 이 상처를 입게 되리란 것을 가정하고 이 패턴으로 이끌었다.
대신 얻은 것은 치맛자락 뒤로 가려진 오른발이 오딘의 시야에서 벗어난 것이지만--.
휘두른 발이 약속한 듯 막아선 창대에 막힌다.
역시 틀렸다.
저 과대평가는 있을 수 없는 괴물.
기원전에 이미 군신으로 군림했던 자가 천 년간 경험을 쌓아 만들어진 존재다. 인류의 모든 전투를 데이터베이스로 가지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전투의 전당이 저 머리.
거기에.
착지하려던 지점에서 위험을 느끼고 그대로 몸을 뒹굴었다. 눈에 스친 내 옷자락이 불길에 휩싸인다.
대체 어느 틈에 적어 놓았는지, 룬문자가 내가 착지하려던 지점에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저 위치에 섰다면 지옥 불에 타고 있겠지.
정말이지 웃기지 말라고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은 사실이지만.
오딘은 창술의 신이 아니다. 무려 마법과 시의 신인 것이다.
자세가 흐트러진 내게 오딘의 손아귀가 날아든다. 창이 아니라고 방심했다간 그대로 저승행이다.
날 할퀴려는 다섯 손가락이, 벼락처럼 내리쳐지는 와중에도 교묘하게 꿈틀거리며. 다섯 가지의 룬 문장을 동시에 써 내려오고 있다.
이놈은 뇌가 다섯 개라도 되는 건가. 어떻게 각 손가락으로 다른 룬들을 저리도 정교하게 엮을 수 있단 말인가.
위력은 말할 것도 없다. 차라리 벼락에 다섯 번 얻어맞는 편이 낫다.
필사적으로 그 악마의 손아귀를 피했다.
최악의 농담은.
속력은 내가 위다. 힘이라면 압도한다.
마음에 이르면--
이쪽은 오딘을 죽이는 것만을 꿈꾸길 천년.
이 모든 걸 그러쥐고 난 패배의 수렁으로 한 발짝 씩 걸어가고 있다.
짐승의 직감으로 돌파해내고, 성능으로 깔아뭉갰지만.
-- 감미로울 정도의 굴욕을 되돌려 받을 뿐.
패배가 쾌감이 되어간다.
내가 어떻게 해도.
근육이 찢어질 정도로 최선을 다해도.
미쳐버릴 정도의 의외성을 짜내도.
그는 포용해 버린다.
아름다운 반격에 내 행동이 점차 교정되어가서.
이 끝에 내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패배로의 추락을 내게 ‘납득시켜 간다.’
…문득 한 소년 신을 떠올리고 경의를 표했다.
막을 수 없는 것을 막아내는 그물을 짜는 자. 그는 이런 절망을 정면으로 마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매 순간 이 절망을 곱씹으면서도 부서지지 않았기에, 이 나를 붙잡아 둘 수 있었다.
아아, 한쪽 팔을 먹은 정도로도 이정도로 위대한 힘을 준 당신. 당신을 모조리 먹어 치웠다면 나는 이 마신을 상대로 이길 수도 있을까.
응, 안 돼. 무리야.
이제 매 순간 패배를 납득해 가는 자신을 부정하는 것도 한계다.
아마 앞으로 칠백 번의 공방 정도. 이후 남은 선택지는 죽음뿐이라고 모든 예감이 담담히 판단한다.
- 아니. 어쩌면 거기까지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계가 기지개를 키기 시작했다.
회오리 치며 부서져 나가는 나의 설원.
동터오는 햇살이란 창살에 꿰 뚫려. 허무할 정도로 눈이 녹아간다.
저 햇살의 파도가 내 몸까지 오면.
이 몸은 전 눈처럼 거품으로 변하겠지.
기대 이상으로 오래 버틴 걸까.
이길 수 있던 싸움에서 못난 꼴을 보인 걸까.
사하 선배는. 레티는.
이 세계의 기상 속에서 무사히 현실로 탈출했을까.
오딘은 만족했을까.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럴 권리를 인정 받은 나 이외에. 누가 나중에 이 괴물을 막을 수 있을까.
의문은 많다.
답은 얻을 수 없다.
햇살이 벌써 발치까지 온다. 이대로 물러나기만 해도 나는 눈사람처럼 무너지겠지만.
여기서 물러날 적이었다면, 진작 물어 죽일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굴욕을 한 줄로 정리한 깔끔한 논리 같은 일격.
그 최고의 일격에 몸이 부서져 나간다.
--- 아.
이 걸로, 끝이구나.
생각해보면, 조금 힘든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고 싶지 않아, 란 말을 마지막으로 하는 것만은 할 수 없다.
그것만은 죽어도 할 수 없어.
이제 쉰다.
응.
마지막에.
조금 행복했었다.
오딘과의 마지막 전투..
소현이 티르의 왼팔을 먹어 펜릴이 되었음에도,
오딘, 그는 싸우는 방법을 모두 마스터 한 군신이었기에 결국은...
그리고 잠시간의 엔딩화면..
이미 움직일 수 있는 수단 따위는 없다.
모든 근육은 아침 햇살에 끊어져 나갔다.
뼈는 사라졌고. 심장은 유리로. 허파는 거품으로.
― 사실. 사라질 것도 없다.
난 이름이 없다.
내겐 모습도 없다.
기억할 기관조차 없고.
결국, 존재한 적조차 없다.
------그런데.
내 이름을 부르던 당신의 목소리가 내 오른발을 디뎌 올려.
내 모습을 보던 당신의 눈빛이 그 다리를 지탱해.
당신의 기억이 이 오른손을 움직여.
네가, 날 존재하게 해.
네가, 날 살아가게 해.
---- 그건 존재 할 수 있을 리 없는 일격.
제 아무리 군신이라도 방어할 수단이 존재할 수 없는 일격.
최후의 최후에. 나는 군신을 한껏 베어 물었다.
그리고 얼마나 깊게 물었을까 판단할 감각조차 없이.
자신의 일격의 결과조차 알 수 없이.
그대로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대로 사라진다.
- 그렇다면 왜.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할 그 기적을 나는 만들어 냈던 것일까.
천천히 눈 속으로 파묻혀 간다. 냉기가 몸을 타고 올라온다.
냉기가 무섭지는 않다.
이 냉기야 말로 내가 태어난 요람. 그곳으로 돌아갈 뿐.
-- 기억이 희미하다. 나는 지금까지 왜 달려 왔었지?
아주, 열심히 뛰었던 기억이 온몸에 가득하다. 무엇을 위해?
목까지 올라오던 냉기가 무언가에 막혔다.
…분명.
아무런 의미도 없을.
이 한 점의 온기를 위해.
이 게임.. 스토리 몰입도가 굉장하네요.
요즘 거의 게임을 하질 않는데 정말 오랜만에 푹~ 빠져서 정신없이 플레이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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